기쁘게 노래하고 즐거워하라 (습 3:14-20)

유명근 목사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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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바냐 3장 14-20절

 

 

 

  오늘은 강림절 제3주입니다. 강림절 제1주의 촛불 점화는 ‘희망’ 제2주는 ‘평화’ 3주인 오늘은 ‘기쁨’의 촛불을 점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요, ‘평화’이며, ‘기쁨’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 회복의 날은 모릅니다. 마 24:36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날 그 때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왕조가 망하고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다 끝났다고 할 때에 다윗의 혈통 가운데서 다시 왕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고 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강림절 제2주에 주신 말씀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에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서신의 목적은 옥중에 있는 자신을 위하여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주는 등 여려 방편에서 자신을 염려하며 힘써 도와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자신의 투옥으로 근심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림으로써 그들을 격려하고 평안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온전하게 구원받는 성도들이 되도록 중보 기도를 합니다. 그 중보기도의 내용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라.’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없게 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의 평안은 주님이 오시는 날을 대비하여 칭찬받을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강림절 제3주는 ‘기쁨’의 초를 점화했습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는 성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바른 자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도 ‘기쁨으로 노래하며 즐거워하라’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대는 기뻐하며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많은 왕 중에 히스기야 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생명이 다하였을 때 벽을 낮 삼아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셔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왕 말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유월절을 회복시켰으며 온갖 우상과 산당들을 제거하여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율법을 지켜 행하도록 가르쳤습니다(왕하 18:1~6, 대하 29:1~19).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남북 왕 전체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뜰 안에 우생제단을 만들고 태양과 달과 별을 섬겼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므낫세 왕을 따라 바알신, 아세라 여신 같은 우상들을 섬기는 종교혼합주의가 득세하게 되었습니다(왕하 21:1~18, 대하 33:1~20).

  그렇습니다.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대는 이처럼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암울한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스바냐서 전체는 악한 남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스바냐는 예루살렘 도성은 물론 온 유대 나라가 갈대아 사람들에게 파멸된 것이라고 전달하였습니다(1:2~18. 3:1~8). 그러므로 장차 임할 심판과 재앙에 대한 메시지를 들은 백성들은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스바냐를 통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쁘게 노래하며 기쁘게 즐거워하라’라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스바냐를 통한 회복과 구원의 말씀은 마지막 날, 종말을 향해 살고있는 우리에게 특별히 강림 절기를 보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쁜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귀한 말씀으로 인하여 피차 큰 은혜가 되어 그날까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형벌을 용서받았으니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대는 기쁘게 노래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14절은 기쁘게 노래하며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삼중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대구적 표현을 통해서 극대화되어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노래할지어다.’, ‘기쁘게 부를지어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란 점층적 표현을 사용하여 그 기쁨을 매우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5절에서 ‘기쁘게 노래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형벌을 용서받았으니 더는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망이라고 하는 화를 면하게 되었으니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온몸을 다하여 춤을 추며 큰 소리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최고의 행복은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의로운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를 용서받은 사건이야말로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으며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며 기쁘게 노래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롬8:1~2절에 서 말씀하고 죄에 대하여 사함받은 기쁨에 대하여는 롬 4:6~8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롬 8:1~2절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4:6~8절 말씀입니다.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교회에 편지한 빌립보서의 내용을 보면 기쁨에 관련된 표현이 무려 11회나 나오는데 동일하게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곤고하고 어렵고 크나큰 시련이 계속되고 대적들이 상존하여 있다 해도 그들 가운데 승리자가 되시고 승리를 주실 분, 평강과 기쁨을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시련과 환란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 그 승리를 확실히 이루실 하나님, 궁극적인 형벌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본문 17절 말씀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감격적이고 은혜로운 내용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본문 서두를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칭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른 누구의 하나님도 아닌 오직 선민, 택한 백성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희 가운데 계시니’라는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내주하시며 동거하시는 임마누엘 되심을 나타내줍니다. 즉 하나님은 백성의 중심에 계시며, 당신이 백성의 고동치는 심장, 내면 깊숙한 곳에 좌정하시는 분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이처럼 그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특징, 그 구원하심이 얼마나 은혜롭고 참된 것인가를 일깨워줍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러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가 구원하시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구원을 이루신 대표적인 실례를 든다면 구약에서는 바로 당신이 택한 구원자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낸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세만 보내시고 당신께서는 하늘에서 팔짱을 끼고 이를 지켜만 보고 계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시기 전에 애굽사람에게 압제 받는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모세에게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들의 손에서 건저 낼 것이라’(출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 사람들에게 고통받는 선민들 가운데서 구원을 이루시겠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와 더불어 당신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시고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해 내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가운데 친히 임재하심을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내 보이셨고 이를 출애굽기 13:21.22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신약 시대를 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그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친히 십자가에 그 몸을 내어주기까지 하심으로 죄 많고 허물 많고 수치와 저주의 영벌에서 우리를 친히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누구이든 상관없이 우리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온전해지거나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하나님 되시며 우리 가운데 친히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은혜롭고 확실한 구원 진리를 굳게 붙잡고 지금도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루시는 능하신 한 분 하나님만을 한결같이 신뢰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근심하는 자 다 돌아오리니

  본문 18~20절에서 18절 서두를 보면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절기는 구약 선민인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지켜야 할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등의 3대 절기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성회로 모여야 할 절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선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간 상황을 염두에 두었기에 자연스레 그들은 절기를 지키고 싶어도 제대로 지킬 수가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여기 ‘근심하는 자들’은 비록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이방 땅에 포로 되어 끌려갔지만,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의 뜻을 바로 헤아리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과 열정을 소유한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진솔한 마음을 헤아리시고 이어지는 19, 20절에 게시된 것처럼 축복된 약속을 베푸십니다. 곧 그들을 쫓겨난 곳에서 구원하여 다시 모아 그들이 애타게 사모하였던 그 일, 곧 하나님을 섬기는 절기를 지키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것을 반복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갖고있는 간절한 열정과 열의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결과 그들에게 내리실 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일면 오늘 우리에게 우리가 어느 곳에 거하든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그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의를 갖고있는 지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 힘겹고 어려우면 대게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방어적인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성도들 중에도 곤경이나 난관에 부닥치면 하나님의 말씀도, 그분의 뜻도 다 망각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까지 제쳐두고 오직 자기 편의와 유익만을 추구하며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리서치 조사

  ‘개신교인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최근 1년 사이에 교회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5명 중 1명은 개신교인이며 무종교인 비율은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리서치는 8일 이 같은 결과가 담긴 ‘종교인구 현황과 종교 활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지난 1년 사이에 종교를 버렸다’라고 답한 개신교인은 12%에 달했다. 개신교인 가운데 1%는 다른 종교로 전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종교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에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에서는 종교에 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18~29세 무종교인 비율은 67%에 달했다.~ 이런 결과엔 코로나 탓에 대면예배가 힘들어진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였다. 전체의 20%가 개신교인이었으며 불교와 천주교를 믿는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17%, 11%였다. 종교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50%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갤럽이 지난 5월 공개한 한국인 종교 현황 조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개신교가 17%, 불교와 천주교가 각각 16%, 6%였다.’ 국민일보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21913&code=23111111&sid1=chr

  그러나 참된 성도, 하나님을 향한 참 신앙을 가진 성도는 그가 어디에 거하든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열의를 잃지 않습니다. 환경이, 그의 처지나 형편이 이를 없이 하지 못합니다. 환경이나 처지, 형편이 열악하다 하여도 어떤 방편을 통해서든 하나님을 향한 자기 신앙과 사랑, 간절함을 표하고자 몸부림치게 마련입니다.

  #다윗과 같은 왕

  #다니엘과 같은 이

  #바울 사도와 같은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잃지 않고 누구를 대하든 어디에 있든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습니다. 실로 참 신앙을 간직한 이들은 어디에 처하든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간절한 열의를 잊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 앞에 복된 자, 의로운 자, 충성된 자로 만 세대에 기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향한 열정, 그분의 뜻과 은혜로우며 복된 역사에 대한 간절함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혹 상황이나 형편을 핑계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뒷전에 제쳐주지 않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형편이나 상황이 열악하면 먼저 그 형편과 상황이 개선되도록 한 뒤에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으며 불신앙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 하나님을 한결같이 섬기며 그분을 향한 열정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 할 때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 많은 저희를 용서하고 화를 면하게 하신 하나님께!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하사 구원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인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기쁘게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 마지막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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