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때에 이르리라 (렘 33:14-16)

유명근 목사
20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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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예레미야 33:14-16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날 그 때에 이르리라’입니다. 그날 그 때에 무엇이 이른다고 하는 것일까요? 1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날 과 그 때에 이르리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선한 말을 성취한 날’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선한 말’은 선민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선민의 회복에 대한 약속은 단지 구약 선민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에서의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 15절 이하의 다윗 왕권과 레위제사장직의 회복 예언은 의의 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참된 평화의 나라인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시고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시며 자기 백성들을 위한 중보 사역을 영원히 수행할 것임을 예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다른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선민 회복 약속은 단지 구약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구약 선민 이스라엘이 예표하는 성도들의 구원약속을 포함한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예레미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의 선민 회복 예언을 보면 구약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은 물론 성도들의 구원에 대해 오묘하게 복합적으로 예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성경 예언의 복합성이라고 하는데 성경의 예언들은 이러한 복합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볼 때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선한 말씀에 대하여 ‘그날 그 때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들을 이루실 때를 따로 정하여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일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분 내키시는 대로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질서 있게 작정하시고 때에 맞추어 일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일 하나도 작정하지 않고 일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태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우에 따라 당신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를 명확하게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신 후에 그들을 건져 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나, 선민이 70년간 바벨론을 섬긴 후에 회복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많은 경우에 그것이 성취될 때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 성취의 때가 명확하게 제시되었든지 제시되지 않았든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그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줄을 믿고 그 날을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의 성취를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그 약속의 성취의 참여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고 하면 오늘 본문에서 ‘그 날 그 때에 이르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받을 때 약속을 기다리는 자세로 받으시므로 피차에 큰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

  본문 15절에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가지가 나게 하리니라고 한 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나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윗 언약을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삼하 7장 16절에서 다윗에게 언약하기를 다윗의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감안할 때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다윗 왕조가 종말을 고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를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면 사실상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파기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나요? 분명 유다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소지가 충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의 멸망이 당신의 언약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본문에서와같이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종말을 알린 다윗 왕조는 몰락한 왕가입니다. 다윗의 혈통 가운데서 다시 왕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무로 하면 다윗 왕가는 다시는 소생 할 수 없는 썩은 고목, 그것도 줄기가 완전히 잘리고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몰락한 다윗 왕가에서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비록 다윗 왕조가 몰락하기는 하였지만, 그 생명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다윗 왕가를 심판하여 몰락하게 하셨지만, 그 생명력까지 거두어 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가에 그 생명력을 남겨 주심으로 거기서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다윗의 왕권이 영원히 이어지게 하심으로 다윗의 언약을 지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썩은 고목의 그루터기 같은 곳에서 순이 돋아나 다시 나무로 성장하는 것을 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다윗 왕가가 꼭 그러하였던 것입니다. 다윗 왕가는 다시 소생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하여 보전되었고 그 안에 생명력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순이 돋아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의 후손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세워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로 영원히 폐하지 못할 위에 서게 하시고 그를 통해 영원한 영생의 나라인 천국을 굳건히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그 소망이 큰 만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바를 정하신 때에 그대로 이루사 여러분들의 소망과 확신이 헛되지 않았음을 밝히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둘째, 구원 받고 살리라

  본문 16절에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올 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셔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는 때를 말합니다. 이를 감안 할 때 본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고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으셨나요? 거듭나서 새 생명으로 살고 있나요? 우리가 잘못하면 신앙의 타성에 빠지기 쉽습니다. 혹은 생명은 없이 형식만 갖추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구원 가운데 있는지 나 자신에게 확인하고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다음과 같이 주문하였습니다.


  ☛고후 13:5 말씀입니다.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그렇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내가 확신하지 못한다면 버리운 자인지 모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요일 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확신이 곧 구원의 확신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계속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 22장에 예수님은 천국을 자기 아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한 어떤 임금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천국 백성의 조건은 첫째는 청함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복을 입지 아니한 사람은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예복은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옷입니다. 그러므로 청함을 받은 자들은 의로운 예복을 입고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야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안전히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은 다윗 계통의 왕권과 그곳에 세워진 성전을 상기하게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아모스 5:4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성도 여러분, 유다가 망하고 이스라엘이 망하고 예루살렘 성이 파괴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다른 것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쏟아 놓고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와 같은 사실을 기억하고 예복을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서 구원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여호와는 우리의 의

  본문 16절에 말씀을 다시 불러오겠습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이미 ‘그날’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그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고 안전을 누리게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안전을 누리게 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 이름을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안전을 누리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은 왜 그를 이처럼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고 부르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선 그가 의로운 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새우신 선민의 왕들 중에는 선한 왕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선한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온전하게 의로운 왕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선한 왕으로 불리는 다윗이나 히스기야 역시도 허물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왕들은 악하였습니다. 특히 유다 말기의 왕들은 그 악행으로 하나님의 양 떼를 사지에 몰아넣거나, 쉴 수 없도록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구약 선민의 왕들에 비해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실 한 왕,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녕 온전히 의로운 왕으로 일하실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근본 하나님으로서 죄나 허물이 없는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땅에서 자기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통치를 받는 그의 백성들이 그에 대하여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처럼 불리는 것은 비단 완전히 의롭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한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의로운 행동, 즉 정의와 공의로 행할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양무리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는 일을 말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외로운 자로서 아무런 죄나 허물도 없으셨지만 자기 양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셨습니다.


  ☛요 10:9~11 말씀입니다.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의가 그들에게로 전가되어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백성들, 교회들에게 있어서 그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는 ‘여호와 우리의 의’,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으로서 의로운 왕이시기에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시며, 나아가 그를 의지하는 자들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기에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처럼 의로우신 분, 우리를 의롭다 일컬음을 받게 하신 의로운 분을 구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역시도 그리스도의 의를 본받아 의로운 삶을 살 뿐 아니라 죄 가운데 헤매는 자들, 죄로 더렵혀진 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 그들도 참된 의를 덧입도록, 구원의 자리에 참여케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그 의를 따름으로 진정 의로운 삶을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날 그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의로운 가지고 나게 하리라고 한 말씀이 성취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안전하게 삽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의’ 즉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라고 부르는 천국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약속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췰 것입니다. 그 날과 그때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1:7) 실로 천국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는 오직 하나님의 심중에만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명확하게 정하여져 있지만,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를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강림절은 바로 ‘여호와는 우리의 의’ 되시는 그리스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훈련을 하는 절기입니다. 촛불 하나하나를 밟히며 그 날을 바라보며 믿음을 갖고 인내로 기다리는 사람만이 천국 구원 약속의 성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것을 인내로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셔서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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