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되던 날 (요 2:1-11)

유명근 목사
2025-01-19
조회수 1698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장 1-11절



 


  지난 주일은 주현 후 제1주이며, 세례 주일이었습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세례 주일 이후부터 사순절 전까지의 ‘주현 후’시기에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해당하는 복음서 본문들을 읽어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기적 사건을 본문으로 선택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사흘 되던 날’이라고 잡았는데 여기서 사흘째 되던 날은 1장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인 예수님께서 빌립과 나다나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신 그날부터 이틀이 더 지난 제3일째 되던 날을 가리킵니다. 본서 저자 요한은 어떤 사건을 기록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건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제 발생한 역사적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이 쓰인 시점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지 50년이 지난 때이고 예수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거의 이 세상을 떠나므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모신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이러한 생각들을 없애기 위해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흘 되던 날일까요? 이에 대한 해석은 이렇습니다. 사흘 전 1장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의 지리적 배경이 유대 지방이라면 본 단락의 배경은 갈릴리 지방의 가나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이틀 동안 유대 지역에서 북쪽에 있는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셨기에 ‘사흘 되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제3일째 되던 날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자 표적이었던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능력을 스스로 입증하여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1장에 나오는 세례요한과 초기 제자들의 증언을 통한 간접적인 신성의 증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실제로도 이 일은 본 단락 이후에 요한복음 전체에 기록된 예수 자신의 스스로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는 7대 표적 가운데 첫 표적입니다. 실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더 많이 보여 주시고 다양한 표적을 행하셨을 것이나 요한은 그 가운데 선별하여 일곱 표적만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 주는 의미 중 하나가 이 사건으로 제자들의 믿음이 굳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사건이야말로 만물에 대하여 지니신 메시아의 신적 주권을 선명하게 보여 주며 동시에 혼인 잔치의 기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복된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배경을 가진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볼 때 큰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문제를 상의하라

  오늘 본문 1, 2절에 보면 가나 혼인 잔칫집에 예수님의 일행이 초대받은 사실이 나옵니다. 그 집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리아의 활동을 생각하면 그녀와 가까운 친척이 아닐지 하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보통 한 주간 동안 계속되는 데 하객들은 이때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신랑과 신부를 위해서 마음껏 복을 빌어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그 집에서 한 주간 내내 봉사하였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3절에 보면 ‘포도주가 떨어진지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잔칫날이 더 남았는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면 이것은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지금까지의 즐거웠던 흥이 깨지고 혼주는 큰 욕을 들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상황에서 초대받아 오신 예수님과 의논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맏아들이고 그의 아버지 요셉은 세상을 떠난 상황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청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문제를 예수님과 상의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인생, 승리하는 달음질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습관이라는 사실입니다.

  곤경에 처하게 될 때 사람들은 의논 상대를 필요로 합니다. 하소연을 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러한 때에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의논 상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기묘자 이십니다. 모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능히 주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자신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찾아와 해결하고 돌아간 여러 사람에 관하여 증거하여 줍니다.

 

  문둥병자(마 8:1~4)나 이방 여인(마 15:21~28) 등등 자신을 배척하는 당시의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까지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면 맞아 주셨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그분은 우리 모두를 향하여 ‘오라’고 하십니다. 무슨 문제가 있든지, 무슨 근심이나 걱정이 있든지 그것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해답을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모든 문제를 그분과 상의하면 형통함을 얻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의 습관적인 상의에도 불구하고 본문 4절에 보면 예수님의 아주 불쾌해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가 그것입니다. 참으로 매정한 거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 15장에 보면 가나인 여인이 흉악한 귀신들린 딸의 문제를 치유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상의할 때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 마태복음 15:22~24 말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그러나 이것으로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이후에 내용을 보면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렇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결국 치유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7, 8절을 보면 주님은 모친의 청을 완전히 거절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후 하인들로 하여금 항아리에 물울 채우게 하고 또 연회장에게 떠다 주게 함으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는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주님으로 이러한 이적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까? 자기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서 능력 행사하기를 망설이고 계신 주님을 움직이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리아의 믿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였을 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일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예수님의 성품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그가 명하시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친척 집, 잔칫집에서 일하던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어려움이 닥쳐 있고, 이것을 해결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상관없는 일을 상관있게 만듭니다. 믿음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때라도 도달하게 만듭니다.

  사실 혼인 잔치의 포도주가 모자라는 것이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실 것을 믿고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왔을 때, 얼마든지 그 문제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도 믿음을 주님께 가지고 나왔을 때 이것은 주님의 일이 됩니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하여 주님께 완전히 맡길 수 있습니까?

  주님이 어떻게 처리하시든지 그대로 따를 생각이십니까?

  그러면 그것은 주님과 상관있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주님의 능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주님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마리아의 믿음은 위대한 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곧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는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산도 움직일 수 있는 생명력 있는 믿음을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참믿음

  다시 5절을 보면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지시하더라도 그 지시대로 주를 믿고 순종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에 임의로 판단하여 어떤 것은 쫓고 어떤 것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것은 결단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브라함이 보여 주었듯이 주께서 지시하는 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 창세기 12:1~4 말씀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100세나 되어서 얻게 된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도록 하나님께 지시받을 때도 아무 말 없이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명령과 자시에 대해 분석하고 계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이런 요소들이 발견되거든 즉시 내어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석하기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믿음에 장애가 됨을 유념하고 철저히 버려야만 합니다.

  아람장군, 나아만은 엘리사가 말한 대로 요단에 들어가 일곱 번 목욕함으로 고질적인 문둥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참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참믿음의 사람만이 천국 백성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요?

  잔치는 엉망이 되고 신랑과 신부는 우울한 출발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충족하며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사실은 진정한 기쁨이나 만족이 없습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의 빈자리는 이 세상 무엇을 가지고도 메울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게 된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모든 문제를 그분과 상의하는 게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참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에 대해 연회장의 평가한 것이 나옵니다. 그는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견해를 그대로 밝혔을 뿐인데, 한 마디로 ‘very good’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일체의 것들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질이 좋으며, 양도 충분합니다.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very good’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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