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것이라 (사 43:1-7)

유명근 목사
2025-01-12
조회수 1739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도행전 43장 1-7절

 

 

 

 

  지난 주일은 우리 교회 창립 36년 주년 기념 예배로 드렸습니다. 주신 말씀은 ‘창립 36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으로 초대교회와 같았던 개척 초기를 소개해 드리면서 초대교회의 역동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초대교회는 세상에 영향을 주는 교회였습니다. 사도들의 기사와 표적 즉 능력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3천 명씩, 5천 명씩 모이는 영적 흡입력이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모인 사람들이 교회다웠습니다.

  행 2:44~46절에 표현된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바울은 로마교회에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며 부지런하여 열심히 주를 섬기는 성도로 이루어진 교회가 될 때,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하고 가까이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모인 사람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세상에 꿈을 주려면 본문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와 같은 위대한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놀라워할 만큼 날마다 위대한 일이 일어나는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 것입니다.

  36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그리고 모인 사람들이 교회다우며 위대한 일이 날마다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 주현 후 제1주와 세례 주일을 맞이하여 ‘너는 내 것이라’라는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은밀했으며 세상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예수님께서 세상에 드러나시고 알려지게 되심은 바로 주현절을 기념하면서부터입니다.

  복음서에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받으시는 예수님의 세례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 같은 형체로 성령이 강림했으며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로써 세례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새 창조의 사건임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신 구질구질했던 아기 예수가 아닙니다. 목수였던 그의 아버지 요셉을 따라다니며 일했던 작은 목수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똑똑히 알게 되었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 이후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포로기가 끝나고 새 출애굽이 임박했음을 선포할 즈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정의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내가 너를 구속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구속함은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로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것은 구별해낸다는 것이고, 곧 이스라엘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부르시고 세례를 허락하시며 ‘너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정체는 여호와께 속한 존재 ‘너는 내것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본문의 말씀이 교훈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더 나은 모습으로 빚으시다

  본문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지으신 이’에 대한 말씀을 이미 서론에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정의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창조하신’과 ‘지으신’에 해당하는 원문 표현을 보면 모두 능동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동 분사형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어떤 행동이 지속되고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야곱으로 불리며 이스라엘이라 칭함으로 받는 선민을 구체적인 목적하에 지속적으로 조성하고 계심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마도 이방 땅에 포로된 자신들의 형편과 상황을 개탄하며 크나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불안하며 고통스러운 형편과 상황으로 인해 자신들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인지, 또 그토록 초라한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혼돈 속에 힘겨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들을 창조해 나가고 계시며 조성해 나가고 계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후 이스라엘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입은 우리들,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빚음 받은 성도들의 삶과 관련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으로 거듭난 자들이고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아직 완전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는 부족한 점들, 연약한 면들, 새로워져야 하고 온전하게 빚어져야 할 부분들이 있으며 이로 인해 성령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처럼 절망적인 상황, 낙심되는 상황이 우리 삶 속에 펼쳐지기도 합니다.

  때로 그러한 시간들은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길어서 우리의 인내의 한계를 벗어날 만큼 심각한 고통을 안겨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중에서도 우리를 향하여 절망하지 말라고, 낙담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왜입니까?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새롭고 온전하게 빚어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순간,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것만 같은 순간도 실상은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어떤 고난이 닥친다 해도, 어떤 어려움이 밀려온다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 만물을 형헌할 수조차 없이 아름답게 조성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여러분들을 분명한 목적을 갖고 더 소중하게 빚으시며 더 온전한 모습으로 조성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절대 보호

  본문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때의 하나님의 보호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본토로 돌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물, 강, 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혹독한 고난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각각은 일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경험하였던 홍해, 요단강, 불타는 광야를 연상케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의 장자들을 속량물로 삼은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바로 가나안이라는 안식처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자마자 홍해라는 난관을 만나게 되었고, 홍해를 극복하자 불타는 광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다 이르러서는 요단강이 그들을 가로 막았습니다.

  출 애굽한 이스라엘,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아 자유롭게 된 이스라엘은 참으로 수많은 시련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하여 주신 기업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기업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는 길에는 불타는 사막도 있었고, 그들을 삼키려는 도적 떼들도 있었으며, 험산준령, 다른 예상치 못한 온갖 위험들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 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가나안에 이른 것처럼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절대 보호를 받으며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 성도들도 우리가 천국 본향을 가는 신앙의 도상에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안전하게 천국 본향에 이르게 될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속량물로 삼으신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의 종노릇 하며 죽음을 향해 치닫는 절망스러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천국 본향으로 향하는 신앙의 도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이 신앙의 도상 곳곳에는 성도의 구원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악한 요소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신앙의 도상을 가는 동안 수많은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의 도상을 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5에도 보면 하나님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시련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본향, 천국에 이르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셋째, 구원을 위한 대가를 치르다

  본문 3절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대가에 대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속량물로 애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스와 스바는 후에 애굽과 통합되었으니, 애굽과 동의어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애굽만 해도 이스라엘에 비하면 훨씬 컸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항상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처럼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하여 애굽은 물론 구스와 스바까지 속량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와같이 보잘것없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상상하기도 어려운 대가를 치르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우리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존재를 속량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 속량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그와 같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셔야만 하였단 말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입니다.

  이처럼 신비롭고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귀한 희생을 통해 이처럼 소중한 구원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대속물로 당신의 몸을 드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부합된 헌신 된 삶, 가치 있는 삶, 고결하고 순전한 삶을 알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그 자리에서 본분을 다할 때입니다.

 

  #김형석교수

 

  전도서의 저자 지혜자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 것은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실론이나 회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최고의 선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본래 주어진 위치를 바르게 파악하고 인생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된 삶, 하나님의 섭리에 부합된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해에도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온전하지 못하여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로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를 빚으시고 계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천성을 향하여 가는 여정에 물과 강과 불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시고 구원하셨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반하는 헌신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은 이와 같은 축복 받음을 인지하고 우리를 지으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면 최고로 행복한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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