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1-19)

유명근 목사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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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장 11-19절

 

 

 

 

  성도 여러분! 오늘은 송년 주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2024년도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비전을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7 말씀을 품고 신앙생활 해 왔습니다. 집안에 가훈이 있으면 그 가훈을 중심으로 가족이 하나 되어 살아갑니다. 학교에도 교훈이 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교훈을 중심으로 학교 생활합니다. 부천시 시장 조용익은 ‘다시 뛰는 부천, 시민과 함께’라는 슬로건을 걸고 시정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는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대로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목표가 없는 것보다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명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한 해 ‘범사에 감사하라’는 표어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중에 혹은 개인적인 기도 시간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활 중에서도 감사에 관심을 두고 산 것이 사실이기에 어떤 해보다도 감사에 집중하며 관심을 두고 살았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B. 프랭클린은 ‘받은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라.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은혜는 물에다 새기고 원수는 돌에다 새긴다’라는 속담처럼 받은 은혜는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받은 상처를 더 깊이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과거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받고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에 대해서도 은혜를 은혜로 생각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열 명의 문둥병자 치유 사건은 예수님께서 결정적으로 당신의 구속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신 시점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마리와 갈릴리의 경계 지역에 거주하던 열 문둥병자는 마침 그곳을 지나시던 예수께 부르짖어 모두 문둥병을 고침을 받았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께 치유를 부르짖은 사실은 그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며, 또한 예수님을 자신들의 질병과 고통을 해결해 주실 능력이 있는 분으로 신뢰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문둥병을 치유 받은 이후의 태도입니다. 즉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유대 출신의 아홉 명의 문둥병자는 그저 자기들의 갈 길을 갔습니다.

  이에 반해 당시 유대인의 의해 이방인과 같이 멸시받고 천대받던 사마리아 출신의 한 문둥병자만은 주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두 천사의 사명(하루동안 드려지는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오라) 그렇습니다. 본문에서도 열명의 문둥병자가 모두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한 명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육체의 질병 치유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구원의 선포까지 듣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비록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 지역인 한 촌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에 불과하지만 실로 심오한 의미를 지니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사실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를 먼저 받은 유대인이 육적 선민의 지위에 연연하여 그 구약의 성취로 오사, 새로이 신약의 복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거나 순종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방인은 주께 감사하며 경배하여 결국 최종적인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예표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일단 모두 복음의 은혜에 접하게 될 것이지만, 그 중의 대다수가 육적 차원에서만 복음을 받아들여 복음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최종 구원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진정 감사치 아니할 것과 즉시 일부의 사람만이 주님의 복음의 참 가치를 깨닫고 주께 감사함으로 영원한 천국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열 명의 문둥병자는 똑같은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날한시에 예수님의 치유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은혜를 잊어버렸고 또 어떤 이는 그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일을 당해도 감사의 유형은 서로 다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는 감사에 대해 전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지난 1년 동안 감사의 모습이 어디에 속하였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합당한 위치에 여러분들을 두시고 새해에는 더욱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먼저 제시하고자 하는 유형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네카는 ‘자기가 진 신세를 부인하는 사람은 배은 망덕하고, 그 신세를 감추는 사람도 배은망덕하며, 그 신세를 잊어버린 사람은 더욱 배은망덕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은혜를 잊고 잊어버리는 것도 이렇게 큰 죄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한 것은 얼마나 큰 죄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그 은혜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7, 18절에서 예수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서글픈 심정을 엿보게 됩니다.

  열 사람 중에 겨우 한 한 사람만이,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과 축복을 받았던 유대인이 아니라 그 반대의 처지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의 차별로서가 아니라 받은 은혜에 도무지 감사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아홉은 어디 있느냐’란 표현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지 못하는 아홉을 향하여 자신이 인간적인 면의 감사를 받지 못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신 것에 대하여 탄식하고 계십니다. 18절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가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이들의 감사가 멈춰진 만큼 이들에게 베풀어진 은혜도 멈추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 히브리서 6:5-6 말씀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둘째, 은혜를 받아야만 감사하는 사람

  앞서 우리는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들은 은혜를 받아야만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감사에 대하여 일차원적인 감사라고 부릅니다. 이는 신체의 무조건 반사 작용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야만 감사할 수 있다는 원인, 결과 선에 머무는 제한된 감사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에 즉각적으로 감사하며 반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동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감사가 메마른 시대에는 이러한 감사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받은 은혜라도 감사하는 그런 자세 역시 귀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신앙은 항상 상황과 조건에 따라 신앙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수준의 감사는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축복받을 때만 기뻐하고, 평안할 때만 감사한다면 위기와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날 수 있는 조건적인 신앙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역대하 24:17-18 말씀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셋째,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

  범사람 무엇입니까? 은혜를 받을 때와 받지 못할 때를 포함하는 우리 삶의 모든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범사라는 말에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만 아니라 불행하고 어려움과 고난이 닥치는 시기도 포함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는 감사할 수 있지만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올 때는 감사할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고난의 때에도 시련의 때에도 감사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참된 감사라고 가르칩니다. 즉 조건 없이,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감사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권면을 했던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감옥에 있으나, 죽을 고비에 있으나, 죽음이 기다리는 로마를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여정에서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가 그러한 본을 보여 주고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는 것은 그것이 성도가 표현하는 감사의 수준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에베소서 5:17-21 말씀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은 이방인의 포로로 잡혀 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정부 관료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니엘을 함정에 빠트려 사자 굴에 던져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때 그 모든 음모를 잘 알고 있었던 다니엘이었지만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으며 감사할 수 없는 중에도 감사하였다고 단 6:10절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 다니엘 6:10 말씀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성도 여러분, 다니엘은 이 일로 인하여 왕의 명을 어긴 자로 고소되어 긴급체포 되므로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자에게 물려 죽기 전, 이미 하나님의 사자가 사자의 입을 봉하고 있어 죽지 않고 오히려 저를 죽이려고 음모를 세웠던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고 다니엘은 왕에게 하나님을 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감사하며 사셨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처럼 혹여나 은혜받고도 감할 줄 모른 삶을 사신 것은 아닙니까? 아니 은혜를 받아야만 감사하는 일차원적인 삶을 사셨나요? 바라기는 앞으로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빈 황무지에 불타버린 잿더미 위에서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은혜를 받되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부인하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일 뿐입니다. 은혜를 받아야만 감사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감사할 순간에도 마땅히 감사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가 참된 성도요, 참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욥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그의 가족도 그의 건강까지도 다 잃어버렸지만 도리어 그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욥 1:21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고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처럼 위대한 감사가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고백되어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감사를 올려드릴 때 하나님은 모든 순간, 모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치도록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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