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으로 (눅 4:14-21)

유명근 목사
2025-01-26
조회수 1228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4장 14-21절

 

 

 

 

  예수님께서는 40일 금식과 세 가지 시험을 광야에서 마치신 후에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먼저 갈리리 여러 회당에서 큰 칭송을 받으시며 가르치시고, 이제 자기의 나신 곳인 나사렛에 이르러 가르치시되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치신다고 본서의 저자 누가는 본문 1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하셨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은혜로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자신의 구주 됨을 알리셨으며 세상을 떠나가신 후 이 거룩한 은사를 제자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사실, 성령은 사역뿐만 아니라 예수님 육신의 존재를 가능케 하신 분이십니다. 마 1:18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사람과 사람. 즉 마리와 요셉의 정혼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정혼과는 상관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영의 중생도 성령으로 시작합니다.

  교회의 봉사 능력도 성령의 능력에 의해 가능합니다.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성도가 성도답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성령 받으면 황홀한 상태에서 기분이 좋고 화끈해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도리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일수록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때로는 순교의 고난을 받기도 했음을 보여줍니다.

 

  ☛ 사도행전 7:54-60 말씀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그것으로 자신의 자랑을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확장되게 하도록 더욱 힘써야 하며 또한 자신의 사역을 좀 더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더 큰 성령의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은 유대인 가정이 10가정 이상 사는 곳에는 어느 곳이든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회당에서든지 그들은 그곳에서 성경과 토라를 강론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나라 없이도 장장 2,000년 동안이나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이 회당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의 습관적으로 회당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강론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본문을 택하신 것은 자신이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한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메시아의 사역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 요소 중에 첫째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입니다. 그러나 서론에서 말씀드렸듯이 메시아의 사명을 전파함에 있어 ‘성령의 임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구속 사역 전반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도의 전제가 ‘성령의 임재’이고 복음 전도의 대상은 ‘가난한 자’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디모데후서 3:16-17 말씀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베드로후서 1:20-21 말씀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많은 사람이 성경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고전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 성령 없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 없이 읽는 성경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심지어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을 전파한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4)’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대상입니다. 본문에서는 ‘가난한 자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라고 되어 있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라기보다 마 5:3의 ‘심령이 가난한 자’를 뜻합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비율은 부한 자들보다 높긴 하지만 가난한 자들이라고 해서 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며, 부한 자라고 해서 복음을 다 거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든지 진심으로 겸손하여 어떤 신적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믿는 자들이 곧 가난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곧 가난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복음은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전파되고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예비 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둘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다시 본문 18절에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피조물이 어떤 것에 포로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욕의 포로로, 어떤 사람은 애욕의 포로로, 어떤 사람은 권력의 포로로, 어떤 사람은 명예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경필 전 도지사의 간증(자기 혁신과 변화 Never give up 은구, 6연승 그러나 이혼하고 아들 영어의 몸이 되고 그럼에도 행복하다. 이유는 회복 탄력성을 가져주었기 때문에 종교, 가정, 다름을 인정, 27일 옥스퍼드대에서 강연)

 

  그러나 인간을 속박하는 이러한 모든 형태의 우상은 그 실체가 ‘죄’이며, 이 죄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로마서 8:1-2 말씀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요한복음 8:32, 34-36 말씀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그렇습니다. 인간의 참 자유는 대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모든 포로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예수께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눈먼 자에게 보게 함을

  다시 18절 말씀입니다.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여기서 눈먼 자라 함은 육체적으로 소경인 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영혼이지 육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영혼의 집이며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에서 인간들과의 대화는 그들의 육적이고 물질적인 질문이나 관심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언제나 그 배후에 있는 실체를 깨우쳐 주심으로써 영적인 세계를 깨닫게 하는 데 힘쓰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나오는 가버나움에서의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이때 마가복음 1:25-26에 보면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바울은 행 16장에서 두아디라 시에서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이때, 바울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자 사도행전 16:18에서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인간은 원래 영적인 존재이나 죄로 인하여 육적인 존재로 타락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적인 존재로 다시 각성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빛을 향해 눈을 뜨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뭇 영혼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소경을 고쳐주신 이들이 그 치유를 통하여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듯이 영의 눈을 뜨게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넷째, 눌린 자에게 자유를

  이제 마지막으로 본문 18, 19절에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눌린 자’는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억압인 불안과 공포, 근심과 염려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유하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억압하고 있는 이러한 요인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은 인간들이 사회적 여건과 제도를 부단히 개선해 감으로써 제거하여야 하며, 심리적인 억압 또한 속죄의 은총을 체험함으로써 제거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하는 영에 의하여 구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을 앞둔 주일로 여러분들도 고향을 찾거나 부모 형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벌써 그곳에 가셨기에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고 비대면 예배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성도도 계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친 이사야 61:1~2의 예언은 공생애 동안 사람들을 위해 전해주신 말씀과 기적에 부합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고 영을 회복시키시며,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는데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금 번 명절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하는 전제 조건이 성령의 임재라고 하는 것을 아셨으니,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시면 반드시 역사는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에 복음 전파의 역사와 모든 포로에서 자유와 눈먼 자가 보게 함과 눌린 자에서 자유함을 얻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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