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빌 1:3-11)

유명근 목사
2021-12-05
조회수 3070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장 3-11절

 

 

  지난주일 말씀의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그 때에 이르리라’입니다. ‘그날 그때’는 아무도 모르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성령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의 날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행1:7절에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답하였습니다. 마 24:36절에서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노아 홍수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즉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들은 체도 아니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느라 정신이 없을 때 멸망이 임하였던 것처럼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간절히 부탁하시기를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날 그 때에 이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그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조가 망하고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다 끝났다고 할 때에 다윗의 혈통 가운데서 다시 왕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무로 하면 다윗 왕가는 다시는 소생 할 수 없는 썩은 고목, 그것도 줄기가 완전히 잘리고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의로운 가지고 나게 하리라고 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고 부르는 천국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들의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받고 기다리는 성도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 피차에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기록하여 빌립보교회에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서신의 목적은 옥중에 있는 자신을 위하여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주는 등 여려 방편에서 자신을 염려하며 힘써 도와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자신의 투옥으로 근심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림으로써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온전하게 구원받는 성도들이 되도록 중보 기도를 합니다. 그 중보기도 안에 들어 있는 기도의 내용을 교훈 삼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라

  본문 5절에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 말씀은 4절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기쁨으로 간구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한 때는 ‘첫날부터 이제까지’라고 합니다. ‘첫날’이란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처음 복음을 전해준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바울이 로마 옥에 갇혀 있던 그 당시까지가 됩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그때부터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까지 그들은 변함없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자주 장사 루디아는 그의 집을 개방하여 빌립보 교회의 교두보가 되게 하였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그를 친절하게 대접하였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 사도가 제2차 전도 여행 당시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헌금을 보내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만난 첫날부터 로마 감옥에 갇힌 현재까지 끊임없는 복음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라 번역된 유앙겔리온은 초기에는 ‘좋은 소식’을 의미하였으나 바울은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과 화해한 일에 대한 소식’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고후5:19절 말씀입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인과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 관계를 허물어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회복하고 수평적 관계를 통하여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예배만 드린 후 뿔뿔이 흩어지기보다는 복음 안에서 기쁘고 즐거운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로의 신앙을 간증하고 대화를 나누며, 신앙이 연약한 성도가 있다면 위로와 권면을 하고, 시험에 빠진 성도가 있다면 서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넓은 차원의 복음에 참여하는 모습은 빌립보 교인들이 사도바울의 고난에 동참하였던 것이나 예루살렘교회가 궁핍에 처했을 때 구제했던 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홍자매 선교헌금

  성도 여러분, 그렇다고 하면 복음에 참여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6절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복음에 참여하는 일을 의심하거나 불확실하게 생각한 일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목회자와 성도간의 모범적인 모습이며,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모습니다. 성도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고 목화자의 사역에 동참해 줄 것이라고 하는 확신은 목회자에게 매우 든든한 자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피차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복음의 일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없게 하라

  본문 10절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바울은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날까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허물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허물없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먼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지극히 선한 것’이란 ‘최선의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분별하다’라는 말은 ‘시험하여 증명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최선의 것을 시험하여 분별하기를 원한다’라는 말입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허물없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라는 말은 ‘완전무결한 태양 빛으로 시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어두운 방에 있으면 더러운 것이 잘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 햇빛에 비추어 보면 더러운 흠과 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흠과 점을 발견하려면 교회는 그리스도와 깊이 교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거룩한 빛에 자기 모습을 늘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허물을 발견하고 그 허물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날에 허물없는 교회, 허물없는 성도로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하면 반대로 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비 성경적인 요소를 지닌 교회를 가리킵니다. 즉 이단 사설을 수용한 교회, 또 사랑이 없는 교회, 또 형식적으로 행하는 교회, 그리고 행할 것을 행하지 않는 교회, 그리고 반대로 행하지 않을 것을 행하는 교회들이 바로 허물이 있는 교회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교회가 건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과연 허물없는 교회가 몇이나 될까요?

  #교회의 허물/허물 많은 목사, 허물 많은 교회

  그렇다면,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니 허물이 없을 수 없어! 그러므로 허물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까?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교회는 최선의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말씀의 빛에 늘 교회의 상태를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흠 없는 교회와 성도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흠이 없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엡 5:26~27절 말씀입니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 흠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회라도 한두 가지 흠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스스로는 자기의 흠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연단 받아 자기의 흠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해 나갑니다. 그래서 점점 흠 없는 교회 허물없는 교회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께서 연단하실 때 원망, 불평 없이 감사함으로 그 연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든 성도님들과 교회는 허물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의 것을 추구하고 분별하는 분별력과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자기 성찰, 그리고 주님의 연단이 함께 요구됩니다.

  #한 송이 장미가 피기까지/조이스목사

 

 

  셋째,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라

  바울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세 번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의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는 신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좋은 도덕적 행위, 곧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는 자가 은혜에 따라 행하는 선한 일들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갈라디아서에 소개되고 있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성도는 이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의의 열매는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요 15:1~5절 말씀입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만 가능합니다. 참 포도나무의 원줄기인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날’은 주님의 재림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재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예수님의 재림은 신약 성경 전체에서 줄기차게 강조된 교리입니다. 재림은 신약교회의 최대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에서는 그러한 간절한 소망이 신앙생활의 주축을 이루어 열망되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 예수께서 반드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재림시기가 아니고 재림의 사실이며,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의 일에 참여하라’, ‘허물없는 교회가 되라’, ‘그리고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최고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에 순종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고난도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므로 하나님의 일등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