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2a, 14-18)

유명근 목사
2024-08-25
조회수 1616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여호수아 2장 1-2a. 14-18절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쓴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라는 책에서 소개한 경험담입니다. 그가 어머니를 뵈러 양로원에 갔을 때, 마침 식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지만 앉아 있는 이들의 반응이 없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둘 정도로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주기도문을 하자 모든 노인이 따라서 드렸습니다. 그는 놀랐습니다. 주기도문이 노인들의 몸에 체화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경험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는 순간에 주기도문이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주기도에 힘을 쓰라. 다른 기도를 모른다고 해도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리고 잠들기 전에 주기도를 드리시오’ 그렇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은 주기도문을 일상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 주님의 기도를 담아내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으로 23장과 더불어 여호수아서의 결론 역할을 합니다. 23장은 여호수아의 유언으로 율법에 대한 순종과 이방 민족과의 분리를 촉구하는 반면, 24장은 대화 형태로 역사적 회고를 통해 여호와만 섬기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회고에서는 여호와의 가나안에 대한 약속과 그 성취 과정을 통해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즉 여호와는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까지 그의 백성을 이끄시는 구원자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전까지 여호와의 하신 일에 관해 설명하였다면, 이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 권면이 얼마나 긴박한 요청인지를 보여주고 있고, 15절에서는 ‘오늘’을 사용하여 그 긴박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즉 ‘아바드’를 사용해 ‘여호와만 섬길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상 숭배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선택된 그의 백성입니다. 고로 우리 또한 여호수아가 긴박성을 가지고 여호와만을 섬기라 한 요청을, 일상에서 주기도문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본문이 교훈하는 것을 실천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온전함과 진솔함으로 섬기라

  오늘 본문의 시작인 14절은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 이제는’이라는 표현은 대게 시간상으로 임박해 있는 사건이나 행위를 언급하는 문맥에서 사용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했을 때부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시점까지를 1~13절에서 회고하고 그동안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에 이어서 본문은 하나님의 그 은혜에 응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함에 대한 이야기로 여호수아는 ‘이제’, ‘지금’ 여호와를 경외하되 온전함과 진솔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원어 적으로 볼 때 불순물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진실함’은 흔들림이 없이 확고하고 부동한 상태를 말합니다. 즉 바른 신앙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에 대한 믿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다른 무엇을 섬기거나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무엇을 또한 섬긴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는 중간 지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의심하는 것 역시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의심하는 자에 대하여 약 1:6, 7에서 다음과 말씀합니다.

 

  ☛ 야고보서 1:6, 7 말씀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결단의 순간에 머뭇거린다면 그것은 결단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온전함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대하여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며 또한 그분과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온전히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께 인정받는 바른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리라

  본문 15절에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해 주신 여호와를 섬기든지 아니면 이방의 신을 섬기든지 양자택일하라고 하며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며 고결한 결정으로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은 여호수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선과 악, 그리고 우리 삶의 최선과 차선들과 같은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택은 이렇게 현실적인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문제에서도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영적인 문제를 선택하는 것은 삶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선택의 결과는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생명이냐 사망이냐를 가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져 죄와 사망의 가운데서 신음하게 했습니다. 이같이 영적으로 잘못된 선택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자신의 결정을 그들의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 있게 외치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경건해지고자 하는 자에게 주의 뜻을 공개적으로 알게 해 주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기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의 공개적 선포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 창세기 18:19 말씀(새벅역)
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의 신앙 또한 공개적인 결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러하신 하나님께 대한 가족 전체로의 신앙이 개인적인 결단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내면적인 질문으로서 모든 자들은 그 자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은 철저히 개인적인 성격으로서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것은 곧 그분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중심이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라는 자세가 되어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냐? 너의 깊은 곳,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 둔 것은 너 자신이냐? 아니면 나냐?’ 이에 우리는 답을 정확하고도 순결하게 여호수아처럼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라

  본문 16~18절을 보면 여호수아의 신앙 결단 촉구에 대해 백성들이 응답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결단 촉구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말이 떨어지자, 바로 결단을 내리는 과단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혼란기에서도 여호수아의 신앙 결단 촉구에 신앙적으로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이 어떤 원리나 이론 체계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출애굽과 광야의 생활, 그리고 가나안 정복과 같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역사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피부로 느꼈던 체험적 신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체험은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며 우리가 고난과 환난 중에 있을 때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구원 역사를 잊지 말라고 하시며 체험적 신앙을 강조하셨습니다.

 

  ☛ 신명기 32:7 말씀
7. 아득한 옛날을 회상하여 보아라.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세대를 생각하여 보아라. 너희의 아버지에게 물어 보아라. 그가 일러줄 것이다. 어른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해 줄 것이다.

 

  오늘도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체험적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와는 달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현저히 줄어든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체험적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물론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특별한 체험도 우리로 체험적 신앙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체험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뚜렷하고 극대화되어 나타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그리스도를 만난다’라는 것은 얼굴을 맞대고 만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면서 죄인과 같이 낮아지셨고 우리를 위해 고난이 닥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속의 은혜를 나의 신앙으로 받아들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체험적 신앙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존재를 열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이런 체험적 신앙를 소유한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이 신앙을 의지하여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더욱 신앙을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체험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고 약간의 고난만 있어도 그 뿌리가 말라 죽는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적 신앙을 소유하도록 힘쓰십시오. 이 체험적인 신앙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하고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희망을 더하는 세대

 

  어제 주일 준비하고 점심을 ‘탕가네’라는 식당에 가서 먹었습니다. 그곳 식당의 주메뉴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입니다. 식사 전에 먼저 계란말이가 나와 먹는 중에 이장로님께서 ‘아, 우리 어렸을 때는 도시락에 얇게 붙인 달걀이 유행이었는데’라고 말씀하시니 저만 빼고 모두가 긍정하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들이 나이 든 사람들의 정서 변화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표현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언어습관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나’ 중심의 단어는 줄어들고, ‘우리’와 같은 공동체 중심 단어들이 늘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동사의 시제 사용도 동사의 과거형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중년은 현재형을, 노년으로 갈수록 미래형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노인들이 옛날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의 예상과 달리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페너베이커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지혜’라고 표현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영적이며 신앙적인 사람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간이 더하면 더 할수록, 신앙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그분과 더욱 가까워져야 진정한 복을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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