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마소서 (창 50:15-21)

유명근 목사
2023-09-17
조회수 2616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장 15-21절

 


 

  #어제 주일 준비 하면서 식사 중에 이재성장로님께서 ‘교장 연수 교육’ 중에 받은 강의 중에 기억나시는 강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모 시에 부시장으로 재직 중에 시장 보궐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선되지 못하고 퇴직 5년을 앞두고 자원 은퇴해야 했고 선거비용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중에 나무 기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묘목을 3, 4년 길러서 내다 파는 일을 하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 제가 알고 있는 선 집사님은 소를 키우시는 데 자금이나 경영 면에서 기르던 소를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고 하셨습니다.

  # 사택을 교회 근처로 이사하면서 제가 소장하고 있었던 책을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즘 책이 뭐가 필요하냐, 보지도 않아 먼지만 쌓여 있으니 버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선뜻 제가 결정을 내지리 못하고 교회로 옮겨 놓았는데 주일 준비하면서 이장로님께서 ‘아이고 목사님! 이런 책들은 버려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묵은 책은 다 버립니다.’ 저는 장로님의 한마디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정하지 못했던 저에게 결단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는 묘목이나 가축과의 헤어짐과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제가 신학교 입학 후부터 모은 책들 아닙니까! 사모가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할부로 산 책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니 40년을 함께 한 책들인데 헤어짐이 그리 쉽겠습니까?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말 못 하는 식물이나 짐승과도 헤어져야 할 때면 눈물이 나는 법 하물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야곱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죽음 뒤에는 반드시 크든지 작든지 간에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야곱의 죽음 뒤에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아버지 그늘 밑에서 요셉의 보복으로부터 보호받았던 형들이, 야곱이 죽자 요셉이 자기들에게 보복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급기야 형들이 요셉을 찾아가 아버지의 말을 빌려 용서를 빌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요셉이 ‘울었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의 말을 듣고 아버지 야곱의 분부를 따라 용서하게 됩니다.

  오늘 저는 이러한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으로 말미암아 피차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화평을 도모하라.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죽음 이후 옛날 요셉을 팔아넘긴 ‘도단 사건(37:18~28)’을 기억하며 요셉에게 자기들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아마도 요셉의 형들은 야곱이 죽자 그동안 아비 야곱을 보아 참아 왔던 요셉이 이제는 자신들에게 보복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지난날의 일들이 하나님 섭리의 결과로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비도 죽고 없는 지금 자신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에게 복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9, 20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오히려 제 일로 인하여 두려워하며 떠는 형들을 용서하고 위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화평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사람은 화평을 도모해야 합니다. 화평을 도모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면서 고후 5:18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는 화평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성도들을 향하여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아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믿지 못하리라(히12:14)’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기에 힘쓰십시오. 물론 우리는 때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너무도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라도 모든 복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상대방을 용서함으로써 화평을 도모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형제들과 화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과 화평하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화평을 도모하는 화평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리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성숙 된 신앙을 가지라

  요셉의 형들이 옛날 요셉을 팔아넘긴 사건을 기억하며 그 죄에 대한 보복의 두려움으로 인해 아버지의 말을 빌려 말하기도 하였지만, 말만이 아니라 요셉 앞에 꿇어 엎드려 자신들이 요셉의 종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를 떠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가 자기 아버지의 종이 되겠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탕자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여전히 아들로서 대우하였듯이 요셉은 이전과 변함없이 형제로서 대우하였습니다. 19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그들이 아무리 자신에게 잘못했어도 그들에게 대한 심판은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었습니다. 즉 복수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자신은 형들을 보복할 권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 짐 정리하면서 과거에 억울한 상황에 고소한 고소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차 판결받기 전에 화해하여 고소를 취하한 문건들이 있었고요. 이참에 다 버려버렸습니다. 맞습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셉이 얼마나 성숙 된 신앙을 소유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요셉에게 성숙한 신앙이 없었다면 형들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인간의 모든 운명 특히 누구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절대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신앙적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 성도의 성숙한 신앙 자세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를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12:19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롬12:19 말씀입니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보면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내가 오히려 판단 받고 정죄 받아야 할 죄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남의 눈에 티가 있으면 내 눈에는 들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녕 여러분은 스스로 복수하려거나 남을 판단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셔서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라

  본문 20절을 보면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어 자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하시려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요셉이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형들은 더 이상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된 도구들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해는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있을 때 우리는 고난도 능히 이겨 낼 수 있고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며 더욱 믿음으로 성장시키려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녕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모든 고난을 인내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진정한 용서와 위로는 형제와 이웃의 잘못을 정죄하고 비판하기에 빠른 오늘날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죄의 은총과 위로를 경험한 자들로서 진정 형제와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며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사죄의 은총을 입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옆에 성도들과 인사합니다. 화평을 도모합시다. 성숙 된 신앙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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