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 (막 12:28-34)

유명근 목사
2024-11-03
조회수 1111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마가복음 12장 28-34절

 

 

 

 

 

  오늘 본문은 성 고난주간(Holy Passion Week)의 셋째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사건을 보고하는 11:20~14:11의 연속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과 사두개인들 간의 부활 논쟁 기사를 보고하고 있는 12:18~27에 이어 계속되는 논쟁 기사로 가장 큰 계명 논쟁 및 그리스도의 신분 논쟁 기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 제목을 가지고 한 서기관이 예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가를 질문함으로써 발생하였습니다. 이 질문은 당시 랍비 세계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는 문제였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은 율법을 모두 613개 조항으로 구분했고 그중에서도 248개 조항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나머지 365개 조항은 덜 중요한 것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런데 랍비들이 이처럼 율법을 분류한 것은 그들이 613개나 되는 조항을 전부 다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차선책으로 율법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여 중요한 조항만이라도 반드시 지키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율법의 중요한 조항과 덜 중요한 조항을 분류하는 데에 항시 논란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서기관의 질문은 바로 이런 배경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서 서기관은 바리새인들의 파송을 받아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였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예수님께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였기에 마가는 이를 알고 그 사실을 높이 평가하였기에 서기관에 대하여 상당히 우호적으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해 첫째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계명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찬동 의사를 밝힌 서기관을 향하여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교훈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눌 때 피차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큰 계명 중에 첫 계명으로 제시하였고 둘째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의 어느 특징 계명을 제시하신 것이라기보다는 구약 성경의 모든 율법을 관통하는 계명이자 율법의 근본정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두 계명은 사랑이야말로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이 없는 율법 준수는 종교적 형식주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 로마서 13:8-10 말씀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신앙의 핵심입니다. 본문 30절에서 주님은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과 의지에서 비롯되는 행동이 곧 기독교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구원의 진리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네 이웃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상실한 자는 엄밀하게 말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상실한 천사가 바로 악마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읽은 신앙인은 맛 잃은 소금이요 기름 없는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전인격적으로 최고의 의미와 가치로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크신 사랑을 입은 자로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으로 응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이행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바른 신앙 큰 신앙이 될 것입니다.

 

 

 

 

  둘째, 이웃을 사랑하라

  본문 31절에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는 레19:18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첫째, 둘째라고 하신 것은 결코 말씀의 중요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단지 논리적 순서로 말씀을 전개하기 위해 삽입하신 것일 뿐입니다.

  주님이 29~31절에서 강조하시고자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31절에서는 29, 30절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결과로서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강조하신 사랑은 우정이나 동정과는 다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순수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곧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비유(눅10:25~37)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성도의 이웃 사랑은 결국 ‘하나님 사랑의 확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처럼 내 마음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 힘과 취향과 노력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하면 능히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요일4:11, 12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 사랑을 확대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막고 축소 시키는 훼방꾼이 되어서는 합당치 않습니다. 내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내 가족, 내 이웃 성도, 그리고 불신 세계까지 확대시켜야 합니다. 이런 생활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진정한 예배 생활입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에 먼 자와 가까운 자

  본문 32, 33절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자신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을 들은 서기관의 반응을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서기관은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찬동하였습니다. 곧 주님의 말씀을 진리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왜 대단하다고하는 것일까요? 마태는 22:34~40절에서 서기관의 이 질문을 다루면서 서기관의 질문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서기관도 마찬가지로 주님을 시험하도록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입니다. 또한 율법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박사입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무리 진리라 해도 당시 정황으로 보아 매우 취하기 어려운 자세였습니다. 이는 그가 그만큼 겸손하고 진리에 열린 마음을 가졌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 마가복음 12:32-33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서기관의 모습이 예수님께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기쁨 자체를 34절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율법의 핵심이요 또한 율법의 완성입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완성된 것이므로 이 진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깝고 믿지 않는 자, 즉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먼데 있는 자란 말씀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에 대한 약속을 믿는다는 뜻이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은 구원받기를 거절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힘으로 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신의 영혼과 생명의 의미, 그리고 사후의 세계 등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대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이 세상에서 얻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쾌락 등에만 집착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를 믿고 복음 안에 산다는 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고전 1:17, 1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전 1:17-18 말씀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성도 여러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짧은 생애의 세속적 가치를 위하여 영원한 세계에서 최고의 가치를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먼 자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알고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있는 자란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갖는 자들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 대한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능력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들의 특징은 겸손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지혜와 최선의 노력을 하고서도 항상 자기 부족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동기와 목적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있기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사랑이신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축복의 말씀은 없습니다. 성도들이여! 이 말씀을 명심하고 가장 큰 계명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멀어져 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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