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근 목사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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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욥기 14:7




  제가 지난주 오후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기에 죽은 것과 같은 가지에서 새순이 나오는 것을 보면 생명이 보이는 것 같아 신기하고 놀라움과 함께 새 힘이 넘쳐나기 때문에 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보통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1922년 발표된 T S 엘리엇의 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시에서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서구의 절망감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습니다.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1918년 발생했던 스페인독감으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당시의 삶은 그야말로 참혹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인 엘리엇은 20세기 초 서구는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상태가 황폐해졌으며, 이 세상은 생명의 잉태가 불가능한 황무지라고 보았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순환과정을 반복하여 봄이 되면 생명을 싹틔우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소생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은 내가 갖지 못한, 잃어버린, 다시는 같이하지 못하는 고통을 더 아프게 합니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


  도시 건축가 김진애씨는 시의 제목처럼 ‘황무지 상황에서는 봄이 도래해도 탄생, 죽음, 재생의 자연의 순환 이치를 기대하지 못한다. 자연은 이토록 눈부시건만, 사람 세상은 이토록 황폐한 황무지 같아야만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의 황무지에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안타까움을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약 140그루의 묘목을 아버님 집 주변에 식재하였습니다. 약 30센티 정도 되는 작은 묘목이기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식재된 나무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을 품고서 심었습니다. 아버님은 심어진 묘목을 보시고 ‘내가 죽을 때쯤 되면 조금 크겠지!’라고, 말씀하시는데 제 마음이 짠했답니다. 묘목을 배달해 준 회사 이름이 ‘나무야’ 이었고 보내준 설명서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처럼 당신을 응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월은 마음이 아픈고로 잔인한 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처럼 건강하고 강건한 성도로서 이웃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