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근 목사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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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시편 94:9





  우리는 흔히 눈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 몸의 창이라고 말합니다. 창은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안에서 혹은 밖에서 내다보거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눈의 시력이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보는 것이 다 다릅니다. 간단한 예로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 가나안 입성을 앞둔 모세는 열두 정탐을 파견하여 두루 살피고 올 것을 명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리 안 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믿고 들어가면 될 일이었는데 믿음의 부족에서 나온 정탐꾼의 파병으로 인하여 큰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것을 보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의 보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그 판단으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물러야 할 자가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민 14:28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원망과 불평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나의 말과 행실을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도 알아야 하겠지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세심하게 보고 듣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 평가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둘 우리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저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장된 데이터가 폭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일이라면 너무 좋겠지요. 아마도 큰 감사와 선물이 돌아올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았다고 하면 그때는 쓰나미와 같은 갑작스러운 놀라운 일로 인하여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요즘 저는 문득 내 나이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적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60세 이상을 고령자로 보고 고용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고령자라고 어르신이라고 노인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도 생리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인 판단으로 고령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과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지인들의 눈에 대하여 생각하면 숨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시간이 많지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눈과 귀를 의식하고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결심을 해봅니다.



- 진솔교회 유명근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