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사 40:3-11)

유명근 목사
2023-12-10
조회수 1793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사야 40장 3-11절


 


  #태클을 걸지마(진성)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거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세월 방황속에 청춘을 묻었다

어허허 어허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 하하하


  ‘진성’ 가수가 이 곡을 5분 만에 작사 작곡을 하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러한 명곡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아버님 산소에 갔는데 환청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아들아 언제까지 무명 가수로 지낼 것이냐? 앞으로 너의 앞길에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이 애비가 치워 줄 것이니 걱정 그만하고 열심히 노래하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와 같은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행 9장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는 이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바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거스틴’은 방탕아였지만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음성이 ‘들어 읽어라’였습니다. 그가 즉시 방에 들어가 성경을 펼쳐 보았는데 그 말씀이 롬 13:12~14입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성인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패역한 이스라엘과 유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주가 된 이사야 39장까지의 기록에서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는 40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는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안에는 당신의 백성들을 심판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사랑하사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긍휼함이 있으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의 대상이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그의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 중에 거하게 합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죗값을 치를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합니다.

 

  ☛ 사40:2 말씀입니다.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이사야는 이러한 위로의 말을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전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외치는 자의 소리

  본문 3절을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고대에 왕이 어느 지역을 행차할 때 전령이 앞서가서 왕의 행차를 외쳐서 알리고 왕이 탄 마차가 지나가기 쉽도록 그 지역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도로를 고쳐 평탄케 하였던 사실을 염두에 둔 권고로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회개를 통하여 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킬 구원자요 그들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영접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라는 권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기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복음서의 기자들은 하나같이 ‘외치는 자의 소리’를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외쳤던 ‘세례요한’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마 3:3, 막 1:2~ 3, 눅 3:4~6, 요1:23)

  이를 감안할 때 하나님의 음성 곧 ‘외치는 자의 소리’는 궁극적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의 길을 예비할 세례요한의 사역을 예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광야와 같은 사람의 마음, 죄와 교만함으로 인하여 만왕의 왕으로 그들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평탄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본격적으로 공생에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는 비록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아니지만 수 많은 사람의 마음이 평탄케 되어 그리스도를 자신의 왕으로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세례요한의 사역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길이 예비되지 아니함으로 그렇지 않아도 완악한 사람들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도 못하였을 것이고 그를 영접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례 요한의 사역은 이 세상 그 어떤 하나님의 종의 사역보다도 귀한 사역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한편 2천여 년 전에 세례요한이 닦아놓은 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만왕의 왕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택한 자들에 대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이는 광야 같은 세상, 높은 언덕, 깊은 골짜기와 같은 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한다는 사명을 오늘날 우리로 깨닫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회개를 통하여 만왕의 왕이요 구세주이시며 심판 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세상을 향하여 외칠 제2, 제3의 세례요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하겠습니까? 누가 이 시대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세상에 알려 그가 오실 길을 평탄케 닦아나가도록 이끄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에 세우신 전령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사역을 잘 감당해야 그리스도께서 더 속히 우리 가운데 온전히 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역을 잘 감당해야 더 많은 사람이 주를 영접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우리와 더불어 맞이하여 기쁨과 감사로 찬양하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명심하여 이 시대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하는 자의 소리

  본문 6절 서두에 나오는 ‘말하는 자의 소리’를 직역하면 ‘한 목소리가 말하고 있다. 외치라’가 됩니다. 그러나 본문의 번역을 감안하면 마치 ‘말하는 자의 소리에게 외치라’라고 명령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상 ‘한 목소리가 선지자에게 외치라’고 명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목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 혹은 하나님 사자의 목소리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외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무엇을 외치라고 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하여금 ‘여호와 영광의 임재’를 예언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면 이제 본문 이하 8절에서는 ‘여호와의 절대 주권과 그 말씀의 영원성’을 선언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과 예루살렘 귀환으로의 명을 받고 기쁨으로 들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쁨의 행군을 하는 그들을 향해 ‘말하는 자의 소리’로 외치라는 말씀은 그들이 결단코 잊지 말아야 할 바를 다시금 주지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6절 말미에 제시된 것처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7절의 설명된 것처럼 얼마 있지 않아 마르고 시드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를 사람의 운명에 빗댄 것은 마치 풀이 한철 이상 지나지 않아 마르고 꽃이 피었다 이내 시들고 지는 것처럼 인생은 얼마 가지 않아 이처럼 쇠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 인생이 참으로 시들고 쇠하는 허무한 것일 뿐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풀과 꽃으로 대변된 인생과 인생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선민을 압제할 바벨론을 지칭합니다. 그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그 국력이 강성해지고 그 영예가 드높아지는 것을 풀의 생장과 꽃의 아름다움에 빗댄 것입니다. 그러나 풀과 꽃이 오래가지 않아 마르고 시드는 것처럼 그들의 번영과 영광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한편 이는 단지 바벨론에게만 적용되는 바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듣는 선민들 자신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도 한 때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속하심, 보호하심으로 자라고 성장하고 형통하며 부와 영예를 누리기도 했으나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보호에서 떠남으로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드는 것처럼 속히 그 세력이 쇠하고 결국 패망에 이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 대답은 8절에서 제시됩니다. 곧 얼마 있지 않아 마르게 될 풀과 같은 인생을 의지하지 말며, 며칠 가지 않아 시들게 될 꽃과 같은 인생의 영화를 소망하지 말고 오로지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해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이를 주지시키는 것은 그들이 다시금 들어서는 약속의 땅을 향한 행군에 있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바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를 망각한다면 과거 유대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나 애굽 등 주변 열강을 의지하는 불신을 자행한 것을 반복할 수 있고 과거 북이스라엘이나 남 유다 왕들중 자신이 누리던 영광과 영예를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곧 우리 역시도 성도란 이름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속의 나라, 천국을 향하여 행군하고 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할 때가 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우리가 소유한 돈이나 명예, 권력이나 학식 등을 의지하는 그릇된 일을 행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를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바, 우리가 참으로 소망할 바는 오로지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아름다운 소리

  이제 하나님의 음성 마지막은 ‘아름다운 소리’로 외치십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여기서 ‘아름다운 소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 포로라는 형벌의 복역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 줄 구원의 소식입니다. 즉 아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소식 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9절을 통하여 강력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외쳐야 하는 이유를 10, 11절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 10, 11절 말씀입니다.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여러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식이 있을까요?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를 받던 중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는 그 어떤 소식보다도 아름다운 소식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거리로 몰려나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이 해방의 소식은 아마도 먼 타국 땅으로까지 끌려가 전쟁과 노역 등 기타 다른 여러 일들에 동원한 사람들에게는 더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소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생각한다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노예와 같이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해방 소식은 얼마나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소식이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식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도무지 해방의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처하여 있었기 때문에 해방의 소식은 더욱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소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벨론 포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진 해방의 소식보다 더 아름다운 소식이 인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인류에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소식보다도 더 아름다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 소식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한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다는 소식입니다. 곧 인류를 사로잡고 있던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다는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인류는 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며 허무하게 죽어 가야만 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의 올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물론 부활을 통하여 사망의 권세까지도 깨뜨리심으로 인류를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다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다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영접하소서

 

  여러분,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가장 소원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을 예수께서 여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구원의 소식은 인류 최대의 소식이며 가장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소식을 만방에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도 이 복된 소식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고 이를 전하도록 또한 부름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은 단지 우리의 것만이 아니며 이를 듣지 못하여 아직도 죄와 사망 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이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함이 마땅한 일이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무리 극심한 고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처절한 재난 중에 있다고 해도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풀과 꽃에 불과하여 쉽게 마르고 시드는 언약한 존재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에 하나님만 의지해하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쁜 소식을 접한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은 제2, 제3의 세례요한이 되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