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것 같은 나의 마음 (렘 20:7-13)

유명근 목사
2023-06-25
조회수 2918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예레미야 20장 7-13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예레미야의 불타는 사명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지명하신 자'라는 뜻으로, 베냐민 땅 작은 마을인 아나돗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16대 요시야 왕 13년부터 남 유다가 멸망할 당시의 왕인 20대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긴 기간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유다 나라의 상황은 바빌론의 남하 정책과 애굽의 북진 사이에 끼어 국외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고, 지도자들은 다른 나라와의 동맹을 모색하여 난국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불신앙과 하나님을 향한 배은망덕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예레미야는 민족을 향한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수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기에 그를 가리켜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슬프도소이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모르나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하였다고 렘 1:6절은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향해 '네가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낳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멸망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시며, "두려워 말고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라는 명령을 렘 1:7~8절에서 내리셔서 그를 선지자로 활동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의 활동은 녹록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을 비롯하여 앞선 장에서 여호와의 심판을 대언하는 자로서 겪고 있는 질시와 비방 그리고 원수의 패망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여섯 번이나 나오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과 동행하시고 보호하시는 여호와에 의한 승리와 구원의 확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가 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의 이와 같은 모습에서 고국의 멸망과 동족의 고난을 예언하는 자신의 사역에 대한 인간적 갈등이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선하심에 대한 굳은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하는 사명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택함받은 주의 종들이라 해서 만사형통하고 고통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어느 시대든지 문제가 많을 때 일수록 하나님의 종들은 고뇌와 갈등을 다른 사람들보다 경험케 되는 것이 주의 종들의 입장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이 바빌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거나 처참히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인하여 비방과 조롱은 물론 친구들의 배신으로 괴롭힘을 당할 때 그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입을 다물고 싶어도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어 외치지 않을 수 없다(20:9)고 고백하는 그 모습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www.kmcnews.kr)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대언자로서의 처절한 고뇌와 내적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승리와 구원을 확신한 예레미야를 통하여 피차에 큰 은혜 받고 사명감이 고취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님의 권유하심

  오늘 본문 7절은 그가 자신이 어떻게 고난의 길일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토로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유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피티타니’ 원형 ‘파타’는 ‘속이다’, ‘유혹하다’ ‘설득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자신의 선지자 사역에 결실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자 절망의 심연에 빠져 하나님께서 자기를 속였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라고 이유를 말합니다. 즉 여호와께서는 지혜와 능력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예레미야보다 강하신 분이시기에 자신이 이길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강권적 요구에 굴복하여 선지자가 되었다는 예레미야의 자조 섞인 푸념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항의와 불평은 그가 눈으로 보는 현 상황, 곧 현실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은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으며 백성들의 회개를 요청했지만, 유다 백성은 오히려 더 강퍅해지고 그에 따라 자기에게 더 큰 고통이 가중되었음에 대한 항의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항의와 불평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너머에 보이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러므로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는 예레미야만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바람, 기대와 전혀 달리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바울(마게도냐), 유대인이 기다리던 메시야


  이러한 사실이 교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므로 하나님의 뜻을 살피려면 겉으로 보이는 현실을 보는 육안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이해하고 그에 근거하여 현실을 파악하는 신령한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실이 우리 맘에 들지 않는다 해서 원망하거나 절망하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그처럼 영적인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별할 때 믿음의 사람, 신령한 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분별하고자 힘썼던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항상 참되시며 모든 것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분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키며 선하고 의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불타는 사명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을 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부족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력하게 당신의 대언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예레미야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성정을 가진 인간임을 잘 들어내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그가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도 유다 백성은 반응이 없고 오히려 더 패역한 모습으로 핍박을 가해오는 데 대한 낙심과 고통을 토로한 것으로 그야말로 어린아이 같은 모습 그대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후반부를 보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예레미야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역을 단념하고 싶은 바람을 현실화시킬 수 없다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 즉 ‘에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죄로 물든 유다를 향한 ‘여호와의 분노’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성경에 종종 사용된 바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볼 때 그 마음이 불붙는 것 같다는 예레미야의 토로는 이미 그 마음에 심판의 불이 떨어진 듯한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즉 그는 그 마음으로 이미 백성들의 심판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수치와 질고를 인하여 더 이상 이를 전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이 당하는 수치보다 백성들이 당할 처절한 고난, 불같은 시련과 고통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를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불타는 사명감이요 또한 신앙고백입니다. (6,25)

  그렇습니다. 예레미야의 고백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표식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 그 말씀을 따라 행하는 일, 그 말씀대로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면모를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말씀은 사람들이 듣기를 원치 않는 책망과 경고,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전하는 바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거기에 개의치 않고 그것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를 일꾼 삼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쫓는 하나님의 진정한 종은 비록 자신이 전하는 말씀으로 인하여 핍박이 따르고 고난이 따른다 해도 거기에 개의치 않고, 그것으로 인해 말씀 전하는 사역을 포기하지 않으며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을 다 전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성경 곳곳에 제시된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들의 삶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12:23) 바울 사도는 딤후4:7절에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라는 확신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에 자신 있게 말씀합니다.


  ☛고전 9:16,17절 말씀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진정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 원하며 하나님께 충성되고 신실한 종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사실, 곧 하나님 말씀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살며 그것을 지켜 행하고 전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 받습니다. 그야말로 말씀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고난의 자리이든, 기쁨의 자리이든, 말씀과 더불어 살며 말씀을 통해 범사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진정 말씀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과 사명이 여러분 심령과 삶에 넘치도록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그러하오나 여호와께 찬양하라

  예레미야의 불붙는 것 같은 마음 세 번째는 접속사 ‘그러하오나’로 시작합니다. 접속사는 앞 단락과 다음 단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는 10절 말씀과 11~13절 말씀의 연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한 마디로 예레미야를 원수로 삼고 비방하는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11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내용으로 10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그러하오나’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말해줍니다. 즉 아무리 포악하고 음흉한 자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해치려 할지라도 자신은 이에 맞대응하는 대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이 난국을 돌파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다같이 11절을 보겠습니다.


  ☛ 렘20:11절 말씀입니다. 
11.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야말로 전능하신 분이시자 자신과 함께하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적과 원수들은 영원한 수치 속에서 파멸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께 피하고 그 힘을 의지함으로써 극복해 왔다는 것을 고하는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12절을 보겠습니다.


  ☛ 렘20:12절 말씀입니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여기서 예레미야는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은즉’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의 10절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대적들이 맞고소하겠다고 위협하지만 궁극적으로 재판장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그분께 모든 판결을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그가 하나님을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설지라도 자신은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러한 본문 표현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벌써 승리의 판결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13절에서 완료형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고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문 표현을 통해 눈물의 선지자요 연약한 선지자였던 그가 어떻게 그처럼 패역하고 완악한 유다 백성 가운데서 평생에 걸친 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는가 그 대답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동시에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움을 구하였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얼마나 큰 고난과 수치를 당하고 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처절한 고난의 현실은 예레미야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살다 간 의로운 하나님의 종들이 맞이해야만 했던 공통적인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승리하는 비결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권유하심의 인정과 능력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타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하오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며 의의 싸움을 싸우며 경건하게 살고자 핍박을 감수했던 바울 사도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고 권면합니다. 여러분, 이 권면을 마음에 새기고 이제 멸망을 향하는 넓고 평탄한 길에서 떠나 의의 길, 천국의 영광에 이르는 좁고 험한 길, 그리스도께서 가신 생명의 길을 걸으며 그 길로 전진하셔서 사명 완수하시므로 의의 면류관을 받는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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