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제 사람을 취하리라 (눅 5:1-11)

유명근 목사
2022-02-06
조회수 2818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누가복음 5장 1-11절

 

 

 

  지난 1월 한 달은 새해에 우리 교회에게 주신 비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표어가 그야말로 표어로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고 1년 후에는 허무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에 대하여 바로 알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첫 시간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시간에는 그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시간에는 무엇보다도 비전을 함께 해야 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이며 또한 교회의 구성요소인 지체들로 구성된 연합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체들은 한 몸을 이루고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은사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코, 작다고 덜 귀하거나 쓸데없다거나 무시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데 더 큰 은사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특수성과 필요성 그리고 영원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하여 사랑이 은사 중의 은사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흩어져 있었던 저와 여러분을 한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하시고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그분의 부르심이요 함께 하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신 은사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려 주님의 몸을 온전하게 세워가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당신과 함께 사역할 제자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아주 단순한 구조로 편집되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두 복음서와 달리 조금 복잡합니다.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신 예수님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가 말씀대로 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제 사람을 취할 것’이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어부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와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말씀은 ‘사람들을 그물로 잡는 어부’라는 의미로 이는 고기를 그물로 잡아들이는 어부와 같이 사람들을 복음으로써 포획한다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돼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일행이 보여준 자세를 유념하고 따른다고 하면 우리도 충분히 사람을 취하는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말씀에 순종하라(1~7절)

  오늘 본문 1절에서 4절, 즉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기까지의 상황을 살펴보면 1절에서는 무리들이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척의 배를 보시고 열심히 일하는 어부들을 보시고서는 그들의 배 중에 시몬의 배에 올라 또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제가 생각할 때에 베드로의 일행이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르다와 마리아. 금자리와 동자리

  베드로의 일행은 남다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 베드로는 전문 어부로서 물고기 잡는 데는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당시 어부들에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갈릴리의 고기들은 밤에 잘 잡힌다고 합니다. 그것도 얕은 여울가에서 잘 잡힌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문 어부인 베드로에게 있어 주님의 명령이 얼마나 고기잡이에 무지한 자의 말처럼 들렸겠습니까?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자면 그것은 어부를 무시하는 말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목수가 어부를 농락하기 위한 말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지금 베드로는 밤새워 일했기에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고 그대로 실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과연 헛수고하고 말았습니까? 주님의 무식함이 드러났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가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물을 배에 올려 실으니 고기가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풍성한 축복의 실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베드로의 실천적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도 마음으로만 순종하고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한낱 달콤한 꿈에 불과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의 열매를 거두려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했기에 가나안 땅을 얻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을 떠났기에 그 놀라운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순종은 믿음의 외적 표현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만 바라고 있습니다. 즉 순종 없이 그저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과 축복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처럼 주님 말씀을 실행하는 성도만이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믿음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지만,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덕목은 주신 말씀을 믿음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수 1:8 말씀입니다.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마 7:24 말씀입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주님은 마 12:50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성도 여러분,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만이 천국 가족으로 인정받고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나는 죄인입니다(8~9절)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주님은 베드로의 집에서 그의 장모의 병을 고쳤고(눅4:38~39) 그 집에서 머물며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호숫가에서 시몬의 배에 오르심을 보고 무례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드로는 주님을 부를 때에 일반적인 호칭 선생 ‘디다스칼로스’를 사용하여 부르지 않고 스승 ‘에피스타테스’를 사용하여 주님을 높여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제자로 부르시기 전에 이미 베드로에게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초월한 메시아로서의 신적 권능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호수 중간의 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이시므로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였고 결국 베드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이 신적 권능의 소유자이심을 깨닫고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8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다른 사람의 무릎 아래 엎드렸다고 하는 것은 자존심을 포기한다는 뜻이요 또 상대방을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도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는 ‘선생’으로 부르던 베드로는 ‘주’라고 부른 것을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높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감당치 못할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깊은 물 속의 물고기를 보시는 분이 자기 깊은 마음의 죄를 모르실 리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주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참된 결실입니다. 베드로의 동료들은 그저 주님이 베푸신 기적적인 일을 보고 놀라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기적을 베푸신 분에게 마음의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의 기적과 표적을 볼 때가 있습니다. 또 주님의 은혜로 병 고침도 받고 사업에 형통한 성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신 은혜의 선물만 중요하게 여기고 정작 그 은혜를 주신 주님께 신앙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당신이 어떤 분인지 죄인들에게 알게 하시고 그들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만드시려는 목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베푸시고 은혜와 은사도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두운 곳에 있으면 자기 얼굴이나 몸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밝은 곳으로 나오면 자신의 몸에 더운 것이 묻은 사실을 발견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밝은 영광 속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주님을 높이고 자신은 낮췄습니다. 이런 자세가 주님께 은혜를 입은 성도의 참된 자세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들은 점점 주님은 높이고 자신은 부인하는 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곧 신앙 성장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올바로 섬기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는 성도는 주님께서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귀하게 들어 쓰시고 더욱 풍성한 은혜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셋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라(10~11절)

  오늘 본문 10, 11절은 베드로와 그 일행들이 주님의 소명을 받고 주님을 좇은 내용입니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여기서 베드로의 일행이란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와 베드로와 그리고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친구가 그리스도를 좇는다고 자기들도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함께 주를 좇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요?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동업자의 관계인지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만 동업이 그렇다고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서로 깊이 믿지 못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기에 동업했다가도 금방 깨어지는 예가 많습니다. 심지어 원수가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니 본문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결단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동업자의 자세인 동고동락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주님을 따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다른 제자들보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특별하게 친근하게 대해 주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우리라고 하면 그럴 수 있었을까? 우리라고 하면 주님의 일을 위한 소명을 받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날 수 있을까? 각각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본문에서 소명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라고 했지만, 마태복음 4:22에서는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 안에 배와 그물 심지어 함께 일하던 아버지까지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자 관계의 해체이며, 어쩌면 가업을 이어가려는 계획도 무산시키는 그야말로 가정의 파탄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실로 엄청난 모순이 아닐까요? 가족 제도를 만드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아내를 취한 자는 군대의 소집도 면제시킬 만큼 가족을 소중히 여기셨던 분이 아니셨습니까(신 24:5)? 그런데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안정된 가족관계를 흔들어 놓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슘페터’라는 사람은 경제가 발전하려면 ‘혁신(innovation)’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혁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하였습니다. 즉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것들을 먼저 깨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변화하여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려면 먼저 낡은 틀을 부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망가져 버린 옛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 즉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성령과 진리의 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잠시 낡은 질서의 중심인 혈과 육의 공동체를 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새것을 위해 옛것들을 부수라는 주님의 명령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단은 단지 빼앗고 파괴하기 위해 유혹할 뿐이지만 주님은 새로운 생명을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해 우리의 낡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그물과 배를 버리게 하였으나 제자들로 인하여 더 큰 방주인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잠시 부친을 떠나게 하였으나 더 많은 하늘의 가족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러한 진리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여 낡은 것을 버리고 하늘의 새로운 것들을 더 큰 축복으로 받으시는 주님의 복된 동업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또 주님의 기적을 보았으나 그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동업자요 제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과 야고보만이 주님을 따르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삶의 분깃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갈릴리 해변의 구경꾼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역의 관람객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역자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합시다. 나는 죄인 인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주님을 쫓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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